[독후감] 악의(惡意)

히가시노 게이고의 <악의>를 오랜만에 다시 읽어 보았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으로 히가시노를 알게 되었고, 고등학생이었던 나에게 독서의 재미를 알려준 책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작가의 책을 좋아했다.
글의 흡입력과 스토리 설계하는 능력이 엄청나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이 사람이 의도한 대로 내가 책을 읽어 나가게 된다는 것이 필력이 정말 뛰어나다고 느끼게 해주는 요소다.

<악의>는 예전에 한번 읽었다.
그런데 최근에 지인이 이 책을 읽고 있는 것을 보고 얘기하려고 보니 막상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아서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악의

대부분 사람의 마음 속에는 악의가 하나쯤은 있거나 있었을 것이라 예상한다.
그리고 앞으로 또 다른 악의를 품게 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르겠다.
모든 사람이라고 하고 싶지만, 100% 단언하는 것은 좋지 않다 생각하여 대부분이라고 하였다.
(물론 여기서 내가 말한 악의는 누군가를 해치거나 살해하는 정도의 악의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세상이 나쁜 사람만으로 가득 차지 않은 이유는, 악의를 품는 것만으로는 누군가에게 피해가 가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도 말했듯 악의가 이기고 나오는 순간 사람은 사람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이해가 안 되지만, 그 악의의 원인이 아무것도 아닌 경우도 있다.
이 책의 주된 주제인 학교폭력 가해자 대부분은 이유 없이 누군가를 괴롭히고 따돌리고는 한다.
제3자는 물론이고 본인들(가해자)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이런 악의가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악의는 또 다른 악의를 낳게 될 가능성을 내포한다.
주인공 노노구치는 후지오의 이유 없는 악의로 인한 괴롭힘을 받고 있는 학교폭력 피해자다.
하지만 노노구치는 후지오의 압박으로 그의 또다른 악의에 가담하게 되어 공범이 되어버린다.
반면 본인과 다르게 후지오에 끝까지 저항하고, 또 사회적으로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히다카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그를 살해하겠다는 악의를 또다시 품게 된 것이 이 스토리의 시작이다.

이미 아무런 이유 없는 묻지마 범죄가 많이 발생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비합리적인 미움이나 증오는 어떻게 발생하고 설명될 수 있는지를 다시 한번 고민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객관적인글?

"악의"라는 책의 주제와는 약간 별개로, 이 소설은 작가 노노구치의 수기와 형사 가가의 수기 2개가 번갈아가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한명의 입장이 아닌 대립점에 있는 2명의 화자를 통한 전개는 이야기에 훨씬 더 몰입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걸 통해 또 하나 느낄 수 있는 건, 수기를 작성하는 방식에 두 사람의 성격이 확연하게 반영된다는 점이다.
완벽한 살인을 꿈꾸고 계획한 작가 노노구치의 글에서는 치밀함이 보였다.
그리고 이 치밀한 살인 계획을 타파해야 했던 형사 가가의 글에서는 냉철함과 날카로움이 보였다.

글에는 어쩔 수 없이 사람의 성격, 주관, 가치관, 어쩌면 편견까지도 반영된다는 것 역시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언론, 기사를 포함한 수많은 글을 읽을 때, 완전히 객관적인 글은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읽는 편이 좋을 것이다.

비슷한 관점에서, 책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히다카가 죽은 후 살해 동기가 고스트라이터였던 노노구치의 비참함이었다는 기사가 났을 때 사람들은 저편의 진실은 모른채 히다카는 물론이고 유가족들에게도 비난을 퍼붓는다.
그리고 비난하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평소 히다카라는 작가에게 관심도 없었던 사람들일 것이라 얘기된다.

이 부분은 많은 공감이 되었다.
실제로 뉴스나 기사 댓글에 보면 언론에 매도되어 무턱대고 대상에게 맹렬한 비난을 퍼붓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내가 범죄자나 잘못된 행위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앞뒤 상황을 전혀 모른채 단지 글 하나만을 가지고 대상을 비난하는 행위는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객관적인 시각을 갖기 위해서 최대한 다양한 시각의 글을 읽고 판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